꼭 10년 전인 2011년 10월. 국내 한 취업포털이 전국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노총각과 노처녀를 구분하는 기준 나이’를 묻는 대담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남성들은 여자 32세를, 여성들은 남자 36세를 꼽았다.
하지만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0대 인구 가운데 남성은 절반(50.8%)이, 여성은 3명 중 1명(33.6%)이 미혼이었다. 이혼이나 사별한 적이 없는 40대 미혼 비중도 5명 중 1명(17.9%)에 육박한다. 통계청은 이런 추세라면 2035년엔 한국인 4명 중 1명이 50세까지 결혼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살아갈 것으로 추정한다.
내가 혼자 살게 될 줄 몰랐지만…
30대 후반 이상인 미혼 중엔 ‘어쩌다 보니 싱글’이라는 사람들이 많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게 당연했던 사회 분위기에서 자란 만큼 일부러 안 한 게 아니고, 좋은 사람을 만나면 결혼할 의향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결혼에 급급해하지는 않는다. 포기나 체념이 섞였지만 ‘살아보니 싱글도 꽤 괜찮다’는 만족감도 적지 않다.
이모(39·여)씨는 “그동안 연애들을 돌아보니 여러모로 남자친구와 있을 때보다 혼자 있을 때 더 행복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이어 “금수저도 아닌데 월급을 쪼개서 육아와 노후대책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무엇보다 내게 주어진 한 세기(100년)를 온전히 내 맘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대기업 부장인 김모(43·남)씨 역시 “굳이 뭘 포기해가면서까지 결혼하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그는 “외로움도 있고 더 나이가 들면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지만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예전에 안 해본 공부나 스포츠를 하면서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인간관계도 충분하다”고 만족해했다. 기성세대에 속하지만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X세대(1975~1984년생)가 ‘싱글 라이프’에도 빠르게 적응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중년도 연애한다
자녀 뒷바라지를 고려하면 몇 살까지는 결혼해 출산해야 한다는 ‘시간표’에서 자유로워지자 오히려 연애가 편해졌다는 얘기도 많다. 한 결혼정보업계 관계자는 “100세 시대가 되면서 2030대의 전유물이었던 이성 간 만남이 최근엔 60대까지 평준화됐다”며 “초혼적령기도 5~10세 늦춰졌고 30~70대까지 만남을 즐기는 싱글들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49세 남성 정모씨는 “아이 가능성을 내려놓으니 조건이나 고려사항 없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사람을 쿨하게 만나고 헤어지는 게 가능해지고 30대 초중반 때보다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일회성이 아닌 진지한 만남을 원하는 회원이 많다는 데이팅 앱을 통해 40대 초반 여성을 만나고 있다며 “서로 경제적 기반이 확실하니 누가 손해네 이득이네 같은 소모적 감정이 없다”고 했다.
“맞아요. 저 눈 높아요”
이들은 스스로 ‘눈이 높다’고 인정한다. 40대 초반인 이모(남)씨는 “인터넷으로 각종 콘텐트를 접하고 사회생활을 오래 한 만큼 외모나 성격, 경제적인 면에서 이성에 대한 눈높이도 많이 높아진 게 사실”이라며 “내 스타일인 상대를 만날 때까지 기다리다 못 만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결혼정보회사 선우의 이웅진 대표는 “3040 싱글들은 신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장 자신감이 넘치는 시기라 결혼이 더 큰 만족을 주지 못한다면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나이가 든 만큼 안목이 높아져 상대를 더 정교하게 보는데, 문제는 나의 늙음은 보지 못하고 상대 외모의 늙음만 본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불확실한 결혼보다 ‘내 일’이 중요
기혼자들을 보며 결혼의 단점을 간접 경험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백모(43·여)씨는 “여자 후배들 사이에선 임신기간 1년, 육아휴직 1년, 복귀해서 1년은 핵심 업무에서 배제돼 3년은 경력단절이라는 말이 나온다”며 “경력 면에서 달려야 하고 나도 내 먹고살 게 있는데 이제 와서 결혼에 따른 의무사항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이어 “특히 이제 내 나이에 만나는 (연상의) 남성과 시댁은 유교적인 아내·며느리 상을 원할 가능성이 커 더욱 결혼이 꺼려진다”고 말했다.
30대에서도 일을 우선순위로 두는 경향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유통기업에 다니는 김모(36·남)씨는 “여자친구가 있지만 아이를 꼭 낳고 싶은 게 아니라면 결혼은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이라며 “가장 중요한 건 내 커리어고 한 단계 뛰어오르려면 일에 매진하고 이직을 해야 할 수도 있는데 결혼하면 회사와 가정에 메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고독사는 옛날얘기?
중년 싱글들에게 외로움과 노후는 두려운 주제다. 익명을 원한 A씨(52·남)는 “골프와 바이크 등 취미가 있지만 그것도 신체적으로 즐길 수 있는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닫는 중”이라며 “뭘 해도 별 감흥이 없어 요즘 들어 아이가 하나 있었으면 힘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반면 미혼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줄어들고 싱글족들이 늘면서 ‘어떻게든 외롭지 않게 살 것 같다’는 기대감도 있다.
이모(44·여)씨는 “결혼을 독촉하던 아버지도 요즘은 자식과 오래 같이 지내니 좋다고 하신다. 또 노후를 위해 돈을 많이 모아야 한다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 주신다”며 “맞벌이 기혼자보다 수입은 적지만 지출도 적은 만큼 안정적인 펀드와 주식 등에 투자하며 노후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배우자와 함께 늙어가는 삶이 부럽기도 하지만 환상은 없다. 박모(40·여)씨는 “친구처럼 서로 위해주며 사는 부부들도 많지만 데면데면하거나 외도를 경험하는 부부도 많이 본다”며 “나이 먹고 힘 빠질 때가 두려워 결혼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되물었다. 그는 “주변에 또래의 싱글들이 많고 동성 싱글들에게 가장 많은 힘을 받는다”며 “나중에 건강상 도움이 필요할 나이가 되면 같이 살자는 얘기도 종종 한다”고 전했다.
‘부모 + 자녀’ 중심 제도 보완 시급
전문가들은 당분간 중년 미혼율이 계속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통계청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절반가량이비혼독신(53%), 비혼동거(46.6%), 무자녀(52.5%)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이런 배경엔 부동산 가격 급등과 취업난 등 경제적 요인뿐만 아니라 개인주의적 성향, 결혼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라는 인식 변화도 함께 깔렸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과거엔 부모가 번 돈을 자녀교육에 다 쓰면,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는 ‘가족 복지 시스템’이 중요한 역할을 해 왔지만, 이제 그런 내부 안전망은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의 문제는 ‘부모와 자녀’로 획일화된 가족에 복지제도는 물론 호적관리, 의료보험, 부동산 청약, 교육시장 등 너무나 많은 시스템이 연결돼 앞으로 불일치 문제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이라며 “미혼·무자녀·1인 가구 증가 현상을 받아들이고 이를 반영해 다른 시스템을 보완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링크 : 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3146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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